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겨자씨만큼만 믿으면 된다? – 믿음이 ‘적은 것’인가, ‘없는 것’인가의 번역 전쟁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왜 그들이 실패했는지 설명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설명을 성경마다 전혀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성경은 “믿음이 적어서”, 어떤 성경은 “믿음이 없어서”, 심지어 어떤 번역은 **“너무 작아서”**라고 한다. 그 결과, 독자들은 믿음이 조금만 있으면 된다는 오해에 빠지게 되고, 예수님의 본래 의도가 완전히 왜곡되고 만다.
마태복음 17:20 – 번역 비교 흠정역 (킹제임스 기반, 다수사본)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니라…” (마 17:20) ➤ 이 말씀의 핵심은 ‘믿음 없음’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겨자씨만큼의 믿음조차 없었다고 지적하신다.
개역성경: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 ‘믿음이 적다’는 표현은 예수님의 의도인 ‘믿음 없음’과 거리가 멀다. 이는 구원 신학과 성령의 권세 사용에 대한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
NIV: “Because you have so little faith.” ➤ NIV는 ‘너무 적은 믿음’으로 표현하며 **사이즈(크기)**의 문제처럼 만들었다. 그러나 본문의 핵심은 **‘믿음 유무’**이지, 믿음의 크기가 아니다.
문맥으로 보면 분명해진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 산더러 옮기라 해도 옮겼을 것이며, 너희가 못할 것이 없었을 것이다.” (마 17:20, 흠정역) 이 말씀은 제자들이 겨자씨만큼의 믿음도 없었다는 전제하에 나온 것이다. 믿음이 적은 게 아니라, 전혀 없었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오역의 뿌리는? → 소수 사본의 영향 개역성경과 NIV는 모두 바티칸 사본, 시내 사본 등 **천주교 중심의 소수 사본(Alexandrian Text)**을 기반으로 한다. 이 사본들은 많은 경우 본문을 축소하거나 의미를 왜곡하며, 신약의 믿음, 회개, 구원, 권능, 왕국 등 핵심 교리에서 묽은 표현 또는 중립적인 어휘로 대체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책망이 흐려지고, 신자의 영적 책임이 모호해지며, 복음의 힘이 약화된다.
다수 사본(흠정역, KJV)은 어떻게 다르게 말하는가? 흠정역/KJV는 다수 사본(Majority Text)을 따르며 예수님의 말씀을 단호하고 명확하게 보존한다. “Because of your unbelief.” (KJV) → *“너희가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이 정확한 표현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직접적으로 지적하셨음을 드러내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참된 믿음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
결론: 믿음은 ‘조금’이 아니라, ‘분명히’ 있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은 **‘조금 있으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겨자씨처럼 작아도 진짜 믿음이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그러나 아예 없는 믿음은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
예수님의 요점은 명확하다: “너희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너희가 이 산에게 말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태복음 17:20, 흠정역) 믿음 없는 자를 위한 주님의 말씀, 그 뜻을 바르게 전하려면 정확한 번역, 정확한 사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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