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성경공부

창세기

  • 성경공부
  • 성경Q/A
  • 창세기

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 재창조 간극 이론 사실인가, 허구인가?조회수 : 6019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년 3월 31일 12시 7분 41초
  • 재창조 간극 이론 사실인가, 허구인가?
     
    세미트라와 보우(H. B. Cemitara and G. D. Bouw),이정원 번역, 정동수 편집
     
    (*) 이 글은 세미트라와 보우가 지은 ‘간극 이론’(Gap theories of creation)의 주요 골자를 번역하고 편집한 것입니다. 제대로 편집된 글(각주 포함)을 보시려면 같이 올리는 PDF 파일을 다운받기 바랍니다.  성경을 사용한 간단한 반박은 다음을 참조하기 보기 바랍니다. 
     
    도입
     
    우리는 모두 창조론자와 진화론자 간의 논쟁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며 그들 간에 불꽃 튀는 법적 전쟁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창조론자들은 창조와 진화의 두 모델을 가르치는 것을 합법화하려고 애를 쓰고 있으며, 진화론자들은 진화만이 유일한 모델로 제시되고 배우며 믿도록 허용하는 법의 제정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물론 창조론자들의 시도는 출발부터 불리했는데 이는 그들의 주장에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만약 처음부터 창조론 모델만이 법으로 허용되는 유일한 모델이 되도록 노력했다면 이 시도에서 더 큰 성공을 이룰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적어도 치열한 논쟁 끝에 중도에서 타협할 수 있는 여지 즉 두 모델 접근법으로 타협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크리스천들과 무신론자들 양쪽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간극 이론 즉 ‘파괴-재창조’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자기 입맛대로 성경의 권위와 과학을 혼합하기 원하는 집단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몇 가지의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극 이론 지지자들 대부분은 창세기 1장의 ‘날들’을 문자 그대로 취하며 많은 수가 여호수아기 10장 13절도 문자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창세기 1장에서 ‘창조되었다’(created)와 같은 단어들에 관한 한 어찌할 바를 몰라 우물쭈물 망설이며 창조 대신에 ‘재창조되었다’(recreated)와 같은 애매모호한 말로 번역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성경과 과학이 무리하게 혼합된 일종의 돌연변이라 할 수 있는 간극 이론은 지난 세월 결과적으로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미혹하고 성경을 오해하며 진리로부터 이탈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성경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확실한 돌연변이 이론 즉 20세기 초반부터 70-80년 동안 크리스천들 가운데 가장 유력한 이론이었지만 지금은 단지 소수만이 선호하며 믿고 따르는 간극 이론을 다루려고 합니다.
      
    간극 이론이란 무엇인가?
     
    간극 이론 신봉자들은 물론 격렬하게 부인하겠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이 이론은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의 한 형태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이 창조의 6일은 ‘6개의 임의의 긴 시’간이라고 가정함으로써 생물들의 진화를 위한 긴 시간을 임의대로 성경에 삽입합니다. 반면에 간극 이론 지지자들은 진화에 필요한 모든 시간을 창세기 1장에서 창조가 다시 시작되기 전인 ‘아담 이전 세상’(pre-Adamic world)으로 역시 자기들의 입맛에 맞추어 임의대로 밀어 넣습니다. 이 두 경우 모두, 어떤 직접적이고 명확한 증거도 없이,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긴 시간을 성경 기사에 삽입합니다. 이런 점에서 간극 이론은 유신론적 진화론의 교묘한 변종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간극 이론에는 대략 몇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간극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간극 이론을 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하나의 간극을 인정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창세기 1장에서 날들은 문자 그대로 취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도 할 것입니다. 후자 가운데는 20세기 초반 간극 이론을 널리 알린 스코필드(C. I. Scofield)가 있습니다. 스코필드는 창세기 1장, 예레미야 4장, 이사야 14, 24, 45장, 에스겔 28장, 35장에서 스스로 뽑은 단어나 구절들을 조합해서 그것에 근거해 자신의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한편 현대 간극 지지자들은 스코필드 모델을 기본 바탕으로 사용하며 거기에 창세기 6장, 베드로후서 2, 3장, 고린도후서 4장, 마태복음 13장에서 나온 구절들을 더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형태의 간극 이론이든 대개는 동일하게 무한대로 긴 시간의 간극이 창세기 1장의 첫 두 절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 무한대의 긴 기간이 어디 위치하는가에 대해서는 두 개의 주요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견해는 그 기간을 성경이 시작되기 전인 창세기 1장 1절 앞에 놓습니다. 이 이론의 지지자들은 교묘하게 표면적으로는 간극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간극이 있습니다. 둘째 견해는 그 기간을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삽입합니다. 이 이론의 지지자들은 창세기 1장 1절이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떤 기간 전에 존재했던 ‘원래 지구’(혹은 원시 지구)에 대해 말한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2절은 원래 지구의 멸망을 묘사하며 1장 3절부터는 재창조를 이야기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서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긴 기간의 간극이 있음을 주장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간극 이론’(Gap theory)이라 불립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1절과 2절 사이 가상의 기간은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현대 지질학이나 생물학 이론과 맞추기 위해 사람들이 고안한 것입니다. 이러한 ‘간극 이론 출생의 비밀’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더 수월하고 정확하게 이 돌연변이 이론의 정체에 대해 접근할 수 있을 겁니다.

    시간의 간극을 어느 지점에 놓든지 간에 간극 이론은 그때 존재했던 세상(지구)이 하나님의 천사들과 사탄의 천사들 간에 있었던 전쟁으로 끝났다고 가정합니다. 그 전쟁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사탄의 천사들을 천국에서 추방하시고 지옥에서 그들을 사슬로 묶은 다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지구의 표면을 멸망시킨 홍수를 보내셔서 그 당시 이상적이고 죄가 없던 세상에 거주하던 모든 짐승들과 사람들 - 혹은 지금의 사람과는 다른 어떤 인류들 - 을 죽이심으로써 끝이 났습니다. 간극 이론 지지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화석의 기록들이 노아의 홍수가 아니라 그때의 원래 세상을 멸망시켰던 홍수를 보여 준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위해 다른 사람들은 진화론자들의 균일론 원리(Uniformitarian principle) 즉 ‘세상과 우주의 모든 것이 균일하게 변하다’는 원리를 적용하면서 화석 기록의 일부나 혹은 전부가 아담 이전의 이상적이던 세상이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한대의 시간을 입증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정확히 어떻게 죽음이 그 세상으로 들어왔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간극이 있었다는 이론에 대해 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스코필드, 라킨(Clararene Larkin), 럭크맨(Peter Ruckman), 낙스(James Knox) 등의 유명한 분들이 이런 이론을 지지하며 국내에도 이들의 영향으로 ‘파괴-재창조’를 성경 해석의 근간으로 삼으려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역자가 먼저 한 가지 밝히고자 하는 것은 재창조 이론과 몇몇 극단적 주장을 제외하고는 스코필드, 라킨, 럭크맨, 낙스 등이 모두 훌륭한 성경 신자들이며 참으로 많은 좋은 것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는 다만 그들이 주장하는 재창조 이론이 인간이 만들어 낸 구시대의 유물로서 성경과 맞지 않음을 보여 드리려 합니다.

    간극 이론의 역사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극 이론이 18세기 초반에 찰머스(Thomas Chalmers 1780-1847)에서 유래되었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이 이론은 라이엘(Charles Lyell)의 정치학 논문인 「지질학 원리」(The Principles of Geology)라는 책으로 인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 책은 영국의 왕권을 전복시키려고 계획된 책략이었습니다. 특히 이것은 팔리(William Paley 1743-1805)의 논쟁에 대항하려고 쓴 책으로 왕권신수설을 찬성하는 자연 철학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는 허턴의 생각을 발전시켜 “현재는 과거를 푸는 열쇠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는 유럽 각지를 여행한 뒤 지구에서는 과거에도 현재와 같은 자연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동일과정설(균일론)에 입각하여 그때까지의 6,000년 창조설을 대적하며 그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 책의 부제(副題)는 ‘지구 표면의 과거의 변화를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여러 원인에 의해 설명하려는 시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책은 다윈이 비글호의 항해 중에 지참했을 만큼 다윈에게 큰 영향을 끼친 책이었습니다. 결국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은 현대 지질학 연구(사실은 현대 진화론)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신학자들은 라이엘의 진화론적 사고의 교묘한 속임수를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분명하게 어떤 과학적 논쟁을 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쩔 수 없이 간극 이론이 라이엘에 대한 대답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즉 균일론 원리가 기독교를 대적하며 성난 파도같이 몰아닥치자 그 당시 이를 두고 고민하던 그리스도인들은 과학과의 화해를 위해 간극 이론으로 돌아섰던 것입니다.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은 우주의 나이가 약 6,000년 정도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의 긴 연대와 타협하려면 성경 기록을 억지로 비틀어 수십만 년 혹은 수십억 년의 기간을 성경 어딘가에 끼어 넣은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가장 적게 훼손시키는 방법은 성경이 본래 침묵하고 있는 곳에 그것을 삽입하는 것이었습니다.

    1859년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생물 진화론을 출판한 뒤 신학자들은 이제 생물학적 진화와도 투쟁해야 했습니다. 대개 그들은 무시하는 방법을 더 좋아했지만, 심하게 압박을 받을 경우에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에 따란 긴 기간을  창세기 1장의 간극이라는 ‘어떤 특정하지 않은 시간’으로 끼워 맞추곤 하였습니다.

    특히 간극 이론은 1909년에 나와 1917년에 개정된 ‘스코필드 주석 성경’에 의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약 70년 동안 전 세계 거의 모든 근본주의 성도들의 독점적인 진화론 퇴치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나오는 개정판 스코필드 성경은 더 이상 간극 이론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이론을 배격하는 특별 창조를 먼저 말한 뒤 간극 이론을 말합니다.
     
    사실 간극 이론은 특히 과학을 잘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기원에 대한 성경 기록이 권위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과학을 수용해야 한다고 느낀 사람들에게 특별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간극 이론과 지질주상도

    원래 간극 이론의 임무는 진화론자들이 진화의 증거로 제시하는 지질주상도((geologic column)를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지질주상도는 진화론자들이 추정해서 만든 가설의 암석층 즉 수십억 년 이상 쌓였던 암석층에 대한 가설적 순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질주상도: 어떤 지역의 지층에 대하여 퇴적암과 화산암, 관입암 등이 겹쳐진 차례, 즉 층서를 여러 가지 기호와 색으로 표시한 그래프를 말한다. 지역 전체의 층서를 나타내는 것을 종합 주상도라고 하는데, 보통은 수직의 직사각형에 오래된 지층부터 새로운 지층의 순서대로 지층을 겹쳐 그려서, 각 지층의 시대나 암질의 특징, 화석의 생성위치, 지형의 접촉면의 위치 등을 나타낸다. 지질조사를 할 때 인접지역의 지층과 비교하여, 같은 지층을 발견하거나 같은 시대의 지층의 두께나 암질의 변화를 조사하는 데 유용하다.

    사실 진화론자들의 지질주상도 가설이 주장하는 순서대로 암석이 존재하는 곳은 지구상에서 오직 두 지역뿐이며 그 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암석층의 순서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처음 완성한 이 엉터리 지질주상도 하나로 이후에 발견되는 모든 화석은 그것에 대입시켜 연대를 자동 결정해 버립니다. 어떤 화석이 언제 것이냐 하면 지질주상도에 맞춰 보라고 하고, 지질 주상도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하면 거기서 그 화석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순환논리의 맹점을 지녔지만 진화론자들에게는 아주 편리한 도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제 우리는 어떻게 지질주상도가 간극 이론과 합치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현대 간극 이론에서는 ‘화석의 증거’ 즉 ‘화석의 기록’을 아담 이전 지구에서 진행된 과정들이나 하나님의 천사들과 사탄의 반역하는 천사들 간에 일어났던 전쟁의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주장에서 우리가 만나는 첫째 문제는, 화석들이 지금의 세상 이전에 존재하던 세상을 파괴시킨 대홍수에 다 묻히게 되었다면 왜 도대체 화석들이 지금도 존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화석들이 아담 이전의 세상이 존재하던 기간에 지층에 쌓였다면 그 세상을 파멸시킨 홍수가 그렇게 큰 손상을 입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창1:2의 ‘형태가 없다’(formless)는 단어를 지금 세상 이전의 홍수를 통한 결과로 땅(지구)이 형태가 없게 되었다는 데 적용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지구의 형태가 없어질 정도의 홍수를 통한 대격변이 실제 있었다면 그때 존재했던 동식물들이 죽어 화석이 되어 지층에 쌓이고 오늘날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화석들이 그 전쟁을 끝나게 한 홍수가 진행되는 동안 형성되었고 그 전쟁이 창세기 1장 2절이 말하는 것 같이 지구를 ‘형태가 없게’ 만들었다면 암석들에 있는 화석들도 다 그 형태를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존재하는 화석들은 다 형태가 있습니다.

    둘째 문제는 화석들이 현재 땅의 바로 표면에서부터 시작해서 수백 미터, 수천 미터 밑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만약 간극 이론이 역사의 진실이라면 지구는 얼마나 깊은 밑 부분까지 형태가 없고 비어 있게 되었을까요? 만일 지구 표면이 밑으로 수천 미터까지 형태가 없이 비게 되었다면, 지구가 다시 굳어지면서 화석들이 암석에 묻힐 때까지 그 화석들이 허공에 둥둥 떠 있거나 그렇게 오랫동안 매달려 있을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 이론의 문제는 지구가 셋째 날이 되기까지는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는 점 때문에 발생합니다. 도대체 그 무엇이 암석들을 텅 빈 허공에 매달려 있게 했을까요? 그러한 무엇이 없었다면 - 당연히 성경은 그런 것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 당연히 암석들은 가라앉고 화석들의 모체인 동식물의 시체는 위로 올라왔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화석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셋째 문제는 노아 홍수에 대한 증거를 포함합니다. 우리는 지구 표면에서 두 개의 퇴적층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첫째 것은 아담 창조 이전 세상의 대파괴와 첫째 홍수에서 나온 것으로 당연히 깊은 곳에 있을 것입니다. 둘째 것은 그것보다는 덜 격렬했던 둘째 홍수 즉 노아 홍수의 흔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그러한 화석 기록을 전혀 발견하지 못합니다. 어떤 화석 기록도 두 개의 홍수에 대한 증거를 보여 주지 않습니다. 노아의 홍수가 성경에서 명료하게 언급된 유일한 홍수이기 때문에 오늘날 발견되는 화석의 증거는 당연히 두 개의 홍수가 아니라 하나의 홍수를 지지합니다. 

    마지막으로 간극 이론이 화석 문제에 대해 어떤 해결책도 주지 않음을 인식했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진화론자들을 조롱하기 위해 친히 화석들을 암석 속에 만드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명제는 과학과 성경 기록 둘 다에 어긋납니다. 그 이유는 창조 세상이 합리적인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사1:18) 창조 세상은 합리적이라고 성경 기록이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스코필드는 화석 기록을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말로 간극 이론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화석들을 원시 창조(지금 세상 이전의 창조)로 밀어버리십시오. 그러면 과학과 창세기 우주 창조와의 어떤 갈등도 생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진화론자들은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분자들이 인간이 되었다는 진화 이론과 간극 이론 사이에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이 여전히 있다고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화석의 여러 층들이 서로 다른 시대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지질주상도에 있는 한 층은 그 충에서 발견된 화석 종류에 의해 결정되는 그것 자체의 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어떤 화석이 더 단순하거나 더 원시적인 것으로 판정되면 그것은 ‘더 오래된 화석’이라고 말합니다. 즉 그것은 덜 진화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등뼈가 없는 무척추동물들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다음으로 어류가 나오고 진화가 되면서 양서류, 파충류,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진화된 포유류 화석이 나옵니다. 그런데 진화론자들의 이런 연대 추정은 곧장 스코필드의 주장과 부합됩니다. 따라서 간극 이론은 스스로 진화를 비난하면서도 지질주상도와 그것이 지지하는 시대들을 받아들이므로 사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만일 어떤 초자연적인 파괴와 대격변을 수반하는 간극이 성경과 진화론자들의 지질주상도를 화해시킨다고 해도 현재 지질학자들은 그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전 세계적인 재난이 지질 주상도를 만드는 암석과 화석들을 형성했다는 견해에 반대를 표명합니다. 그런 대격변은 오늘날까지도 지질학에서 신성불가침의 원리로 알려진 균일론 원리(홍수 격변론에 반대하는 균일 변화 원리)에 직접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반역한 천사들에 대한 심판 때문에 화석들이 형성되었다면 현대 지질학의 견해와는 반대로 지질주상도는 급속도로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간극 이론 지지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파멸-재창조’의 간극 이론은 우리가 오늘날 바위나 화석들에서 보는 것에 대해 사실 아무것도 설명하고 입증하지 못합니다. 만일 그들이 주장하듯이 지구가 창세기 1장 2절에서 형태가 없게 되었다면 암석층들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암석들에는 그 어떤 (온전한) 화석들도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형태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소필드(Jack Sofield)는 간극 이론을 ‘자살 개념’이라고 부릅니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질학적 시대 이전이나 이후에 루시퍼를 벌하기 위해 사용된 징벌/재앙에 관해 간극 이론이 무어라고 논리를 펴든지 간에 간극은 자기 부정적입니다. 즉 그 이론을 만들어낸 바로 그 개념 자체가 그것에 의해 소멸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자살 개념’으로 언급될 수 있습니다. 논리 면에서의 이러한 어려움과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딜레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극 이론이 성경 말씀에 의해 지지받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라고 말씀하시는 이성적인 하나님의 본성과 성품과는 모순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간극 이론과 넷째 날의 창조

    스코필드는 세 가지 창조 행위를 허용합니다. (1) 하늘들과 땅의 창조, (2) 동물 생명의 창조, (3) 인간의 창조. 즉 그는 첫째 창조는 연대가 없는 무한대의 시간 속 과거로 넘겨버렸고, 나머지 두 개는 자기가 창세기 1장 3절부터 시작된다고 추정한 지구(땅)의 창조로 넘겼습니다. 그는 출애굽기 20장 11절이 하나님께서 창조의 6일 동안 하늘들과 땅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말하는 것을 거부하고 빛, 궁창, 해, 달, 별들과 식물들이 이전 세상에서 창조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엿새 동안에 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출20:11)

    그는 그때의 파괴가 완벽해서 어떤 빛도 지구의 표면에 다다를 수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수증기층이 지구를 덮어 태양이나 달로부터 오는 빛을 막았으며, 넷째 날이 될 때까지 그 빛들이 지구를 관통하지 못하게 했다고 가정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사실 넷째 날에 아무것도 창조하시거나 만들지도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제기되는 질문들
    성경 기록에 아무런 언급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임의대로 화석들이 간극이나 무한대의 긴 기간 동안 형성되었다고 자동으로 가정할 수는 없습니다. 식물, 동물, 사람은 셋째 날, 다섯째 날, 그리고 여섯째 날이 되어서야 창조되었으며 그전에는 창조되지 않았음을 창세기 1장이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하게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만일 현시대 퇴적암들 내의 화석들이 가상의 ‘첫째 창조’ 즉 아담 이전의 창조 세상에서 살던 모든 생명 형태들의 화석들이 맞는다면 이것은 과거 무한대의 시간에서 고통과 죽음이라는 비극이 지속하였음을 증언해 줍니다. 죄의 삯이 사망이라면 과연 그 세상에 사망이 들어오게 한 원인 제공자 즉 첫째 창조 세상에서 과연 처음 죄를 지은 존재는 누구일까요? 루시퍼의 반역이 심판의 징벌을 불러일으키기 전에 왜 수억 년의 시간이 지나갔을까요? 그렇다면 그 징벌도 루시퍼의 반역 때문인가요, 아니면 이름도 알지 못하고 성경에 기록도 없는 그 첫째 죄인 때문인가요? 그러면 성경의 첫 사람 아담은 죽음이 불러온 화석 무덤 위를 걸어 다녔다는 말인가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한 사람 아담에 의해 죄가 임하고 그 결과 사람과 창조 세상에 사망이 임하였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롬5:12).
    또 온 창조 세계가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롬8:22)
    그러므로 아담 이전에 심판으로 인해 사망이 임하고 화석들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성경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간극 이론과 성경 기록들
    이제부터 우리는 간극 이론 지지자들이 애용하는 몇 구절들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런 구절들을 설명하기 전에 간극 이론 지지자들이 보통 잘못 사용하고 있는 두 개의 영어 단어에 대해 잠시 살펴보려 합니다.

    먼저 ‘세상’(world)이란 단어는 지난 200년 동안 의미 면에서 크게 변했습니다. 1933년 이전에 출간된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 발견되는 세상에 대한 첫째 정의는 ‘인간의 존재: 이것의 기간’(human existence; a period of this)입니다. 둘째 정의는 ‘지구 또는 그것의 영역: 우주 또는 그것의 일부분’입니다. 셋째 정의 즉 마지막 정의는 ‘지구의 거주민들 또는 그들의 한 부분’입니다. 1933년 판을 보면 첫째 정의는 네 단을 차지하고, 둘째 정의는 세 단과 삼분의 이를 차지하며, 셋째 정의는 여덟 단을 차지합니다. 그것은 1933년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첫째 정의가 ‘지구’입니다. 그 이유는 현대 사전들이 더 이상 한 단어가 의미하는 여러 가지의 뜻 전부를 말하지 않고 가장 보편적인 용례만을 기술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행은 196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첫째 정의는 지표면에 살던 사람들 혹은 사람들의 시대를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는 이제 맨 마지막에 나옵니다. 의미심장하게도 성경 기록에서 ‘세상’의 첫 용례는 사무엘상 2장 8절에 나옵니다.

    그분께서 가난한 자를 먼지에서 일으키시며 거지를 거름더미에서 들어 올리사 통치자들 가운데 앉게 하시고 또 그들이 영광의 왕좌를 상속받게 하시나니 이는 땅의 기둥들이 주의 것이요, 또 그분께서 그것들 위에 세상을 세우셨기 때문이라.

    분명히 ‘세상’에 대한 성경적 정의는 땅의 표면 즉 땅의 기둥들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성경 기록이 세상에 대한 정의를 땅의 사람과 창조 세계로 그 뜻을 확대시키지만 세상은 결코 땅과 하늘의 동의어가 아닙니다.

    이런 차원에서 성경의 정의에 의하면 ‘아담 이전 세상’을 주장하는 것은 곧 아담 이전에 땅에 사람이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만일 땅 위에 사람이 없었다면 아담 이전의 ‘세상’이 아니라 ‘땅’(지구)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따라서 간극 이론은 성경적 세상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것이 창세기 1장 28절에 나오는 ‘replenish’라는 동사에서도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신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의 원래 의미는 ‘완전히 혹은 충만하게 사물, 동물 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입니다. 덧붙이자면 replenish에 대한 이 정의는 1533-1660년 즉 킹제임스 성경이 번역되던 당시의 언어생활에서는 ‘아주 보편적’인 의미였습니다. 아담 이전 세상 옹호자들이 1700년대 후반에 이 말을 ‘다시 채우다’(refill)의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까지 replenish라는 단어는 ‘다시 채우다’라는 단어의 동의어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보기 바랍니다.
    http://new.keepbible.com/BQNA01/View/4G9

    창세기 1장 28절의 경우 그 배경은 주님께서 사람을 위해, 사람 전에 창조하셨던 환경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9장 1절에서 그 단어의 같은 용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면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그곳에서도 식물들은, 창세기 8장 11절에서 비둘기가 되돌아 올 때 가지고 온 올리브 나무 잎사귀가 입증해 주는 것처럼, 방주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을 위해 준비가 되어 회복되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땅을 충만히 채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처럼 창1:28과 9:1을 보면 replenish가 거주자들을 위해 준비된 환경을 ‘채우는’ 것이기 때문에 간극 지지자들은 결코 그 단어를 아담 이전 지구의 창조를 위한 증거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영어와 히브리어 자체가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간극 이론에 사용된 증거 본문들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
    어떤 사람들은 자기만의 편향된 애완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성경을 묘하게 왜곡해서 해석합니다. 그리하는 이유는 그의 애완 이론을 지지해 주는 명백한 성경 기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의 애완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심지어 성경 본문이 잘못되었다거나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이론을 폅니다.

    간극 이론 지지자들 역시 자기들의 애완 이론을 위해 창세기 1장 전체의 번역 혹은 특별히 창세기 1장 1-2절의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제 1절을 봅시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그런데 언어학자, 인류학자, 그리고 간극 이론 지지자인 커스탄스(Arthur Custance)는 이 절에 대해 “이 절은 당연히 지금처럼 ‘처음에’로 번역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커스탄스는 히브리어 모음 표시가 ‘원어’에는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더불어 커스탄스는 적절한 번역은 ‘최초로’(In first) 또는 ‘우선은’(To begin with)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떤 초기 번역이나 권위도 자신의 생각과 같지 않는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자연스럽게 인정합니다.

    그러나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느낌을 제외하고는 현재 본문 즉 ‘처음에’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 권위는 없다.

    여기서 핵심은 창세기 1장 1-2절에 대한 비평이 하나의 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느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could be’와 ‘may be’를 주로 사용하며 26페이지까지 자기 의견을 개진한 뒤 커스탄스는 조심스럽게 창세기 1장 1-2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전 상태에서 하나님은 하늘들과 땅을 완벽하게 하셨다. 그러나 땅은 폐허가 되었고 황량해 졌으며 심판의 어둠이 그 표면 위에 있었다.

    자신의 논문을 통해 커스탄스는 성경 사본과 과거 문헌에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는 내용이 하나도 없음을 자연스럽게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1-2절에서 번역 오류를 제기하는 것은 우리가 지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성경 기록의 보존 교리(시12:7)가 내포하고 있는 연속성을 만족하게 할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기에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창세기 1장 2절 - 봐브(vau)
    성경 기록에 아담 이전 세상에 대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창세기 1장 2절을 시작하는 히브리어 접속사 ‘봐브’(vau)에 대해 두 가지 중요한 주장을 합니다. 일단 여기서 봐브는 접속사이거나 이접 접속사이며 따라서 ‘그리고’ 혹은 ‘그러나’를 의미합니다. 봐브는 히브리 알파벳에서 여섯째 글자이며 구약성경에서 약 28,000번 나오는데 그중에서 25,000번은 접속사인 ‘그리고’로, 3,000번은 이접 접속사인 ‘그러나’로 번역됩니다. 성경의 이런 용례를 보면 봐브는 이접 접속사보다는 접속사로 8배나 넘게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논문을 쓰면서 우리가 자문을 구한 대다수의 히브리 학자들은  창세기 1장 2절에서 봐브는 ‘그러나’가 아니라 ‘그리고’가 정확한 번역이라고 말합니다. 오리겐의 부패한 ‘70인역’(Septuagint)을 제외한 모든 고대 번역도 이와 같습니다. 2절 시작 부분을 ‘그러나’라고 번역한 70인역(LXX)은 오리겐이 좋아했던 ‘이전 세상 모델’(pre-world model)을 따라 그렇게 번역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성경 기록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했던 그리스 신화를 반영하여 이 단어를 ‘그러나’로 번역하기를 원했습니다.
     
    창세기 1장 2절 - Was or Became?
    창세기 1장 2절의 첫 글자가 ‘그리고’냐 ‘그러나’냐 하는 논쟁은 그 절의 넷째 단어인 ‘was’와 비교하면 그리 영향이 크지 않습니다.

    And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대부분의 간극 이론 지지자들은 이것을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로 읽으려 하지 않고 여기의 ‘was’를 ‘became’으로 바꾸고는 “그러나 땅은 형태가 없게 되고 비게 되었다”로 읽으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상태를 나타내는 was를 사용하면서 결코 땅의 상태의 변화를 나타내는 해석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성경대로 믿으려면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로 믿어야 합니다.
      
    창세기 1장 - ‘창조하였다’(Created)와 ‘만들었다’(Made)
    간극 이론 지지자들은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여러 논문을 써서 히브리 단어 바라(bara)는 무에서부터 유를 창조한다는 의미이고, 히브리어 아사(asah)는 ‘만들다’ 또는 ‘형성하다’는 의미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것들은 두 개의 다른 단어들이며 완전히 동일한 의미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자”라고 창세기 1장 26절에서 말씀하시고 다음 절에서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동일한 행위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개의 단어들이 번갈아 나타나는 경우들을 지적해서 보여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을 꼭 지적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현재의 지구를 만들기 위해 이미 파괴된 이전 땅의 물질을 사용하셨다면 하늘과 땅의 창조는 무에서 유로의 창조가 아니고 기존에 있던 물질로부터 나온 개혁이어야 하고 그래서 창세기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모두가 ‘창조하다’ 대신 ‘만들다’로 기술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 1절 앞에 간극을 두려는 사람들의 주장에 의하면 1절에 ‘창조하셨다’(created)를 사용하는 것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그들의 주장이 성경과 부합하려면 1절은 ‘만드셨다’(made)라고 번역되어야 합니다. 또 1절과 2절 사이에 간극을 두려는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자면 창세기 1장 3절 이후에 나오는 ‘창조하다’라는 단어를 모두 ‘만들다’로 바꾸어야 합니다.

    실제로 창세기 1장 전체가 이전에 창조된 것에 대한 재창조나 회복을 설명한다면 왜 성경은 ‘create’와 ‘make’를 다 사용할까요? 계시록 10장 6절은 ‘창조하셨다’라는 단어로 창세기 1장 전체의 창조를 총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 곧 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신 분을 두고 맹세하기를 더 이상 시간이 있지 아니하려니와

    간극 이론 지지자들의 탁월한 정신은 ‘원본’은 말할 것도 없고 킹제임스 성경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 개혁 성경 번역에서 create와 make의 ‘오류들’을 수정하려는 열정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정이 커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창세기 1장 - 해와 달과 별들
    그다음으로 해와 달과 별들의 문제가 있습니다. 간극 이론 지지자들처럼 이러한 천체들이 아담 이전 지구의 멸망 이전에 이미 창조되어 존재했다고 가정한다면 당연히 그것들은 넷째 날에 창조되지도, 만들어지지도, 형성되지도 않았어야 합니다(창1:14-19). 그런데 창세기 본문은 이런 천체들이 넷째 날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서도 ‘창조되었다’는 말은 사용되지는 않았는데 이 말은 25절의 짐승과 26절의 사람에게도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짐승과 사람이 창조되지 않았을까요?

    간극 이론 지지자들은 물로 된 덮개나 구름이 땅의 표면으로부터 이러한 천체들을 숨겼으며 하나님께서 넷째 날에 그 장애물을 제거하셨다는 황당한 주장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둘째 날의 궁창은 대기권의 재창조를 말하며, 흐릿하게 보이도록 만든 그 장애물은 궁창 위에 있는 물들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창조부터 홍수까지 수증기나 얼음 덮개가 계속해서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간극 이론 지지자들은 그 덮개가 넷째 날에 투명하게 되거나 반투명하게 만들어졌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 주는 간단명료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천체들을 하늘의 궁창 위가 아니라 궁창 속에 두셨다”(17절)는 점입니다. 또한 간극 이론을 주장하려면 ‘드러내셨다’를 포함하도록 ‘만드셨다’(Made)는 말의 의미를 수정해야 합니다.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Without Form, and Void)
    창세기 1장 2절에서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라는 말은(히브리어 ‘토후(tohuw)와 ’보우‘(bohuw)) 성경 기록의 다른 두 곳에서도 나옵니다.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이사야 24장 1절에 이 말이 섞여 나오지만 히브리어 토후와 보우는 이곳에서는 나오지 않으며 ‘형태가 없고 비어 있다’는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보라, 주께서 땅을 텅 비게 하시며 피폐하게 하시고 뒤집어엎으시며 땅의 거주민들을 널리 흩으시리니

    대신에 ‘바카크’(baqaq)와 ‘바라크’(balaq)라는 히브리어가 이사야 24장 1절에서는 각각 ‘텅 비다’와 ‘피폐하다’로 번역되었습니다. 넓은 맥락에서 보면 이사야 24장 1절은 미래 사건이지 아담 이전 땅에 대한 회상 장면이 아닙니다.

    또한 창세기 1장 2절의 ‘토후’와 ‘바후’는 예레미야 4장 23절과 이사야 34장 11절에 함께 나옵니다.

    내가 땅을 보니 보라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으며 하늘들을 보니 그것들에는 빛이 없었고(렘4:23)
    다만 가마우지와 해오라기가 그것을 차지하며 또 올빼미와 까마귀가 그것 안에 거하리니 그분께서 그 위에 혼란의 줄과 공허의 돌들을 팽팽히 드리우실 터인즉(사34:11)

    이 둘 중에서 예레미야 4장 23절만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로 번역되었고 이사야서의 구절은 ‘혼란’과 ‘공허’로 기록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 2절만 제외하고 다른 두 구절이 심판과 파멸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에 간극 이론 지지자들은 창세기 1장 2절도 심판의 결과를 보인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큰 맥락에서 볼 때 다른 두 절들이 미래 일들을 말한다는 점입니다. 예레미야 4장 23절이 창세기 1장 2절과 가장 비슷하게 번역되었지만 예레미야서에서 표현된 파괴는 간극 이론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파괴가 아닙니다. 간극 이론이 말하는 창세기의 파괴는 예레미야서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홍수(큰 물)를 포함하며 이 물은 아담 이전의 사람들이 거주했던 땅과 모든 도시들을 완전히 소멸시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4장 23절은 이사야 24장의 사건들처럼 미래에 있을 심판을 말합니다. 즉 거기의 상황은 오래전 과거에 발생했던 창세기 이전의 어떤 기록이라기보다는 계시록에서 묘사된 미래의 사건들입니다.

    예레미야와 이사야서의 심판의 대상들은 이스라엘과 에돔이며, 온 세상이나 특히 아담 이전의 종족은 더욱 아닙니다. 그 책들에서 언급된 심판들은 특정 민족이나 특정 장소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형태가 없고 비어 있는’ 그 땅(the land) 즉 이스라엘 땅의 생존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주님은 27절에서 “내가 완전히 끝을 내지는 아니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이러한 절들은 창조 이전의 세상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창세기 1장 2절과 이런 구절들을 연관시키는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입니다.

    간극 이론 지지자들은 또한 이사야 45장 18절로부터 또 하나의 불필요한 논쟁을 끄집어냅니다.

    하늘들을 창조한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하나님은 친히 땅을 조성하고 만들며 견고하게 하였으되 땅을 헛되이 창조하지 아니하고 사람이 거주하도록 조성하였느니라. 나는 주니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간극 지지자들은 여기서 ‘헛되이 창조하지 아니하고’라는 말이 이전 세상을 가리키며 이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창세기 1장 2절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처럼 이렇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18절의 ‘조성하였다’(formed)는 단어를 무시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문맥에서 보면 ‘조성하였다’는 단어는 창세기 1장 2절을 가리키지 않고 창세기 1장 9-13절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그 단어는 첫째 날에 지구(땅)가 형성된 것을 가리키지 않고 셋째 날에 마른 육지와 식물들이 형성된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은 그 성경 구절 자체가 바로 그것을 의도한다는 점입니다. 즉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아무 이유 없이 즉 헛되이 땅을 창조하지 않으셨고 완성된 그 땅(지구)이 자신의 목적에 맞게 거주자를 수용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앞뒤 문맥상 그 거주자는 아담 이전의 어떤 종족이 아니라 사람 더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생성 세대들(generations)
    국내의 간극 이론 지지자들은 창세기 2장 4-5절을 가지고 논리를 폅니다.

    땅과 하늘들이 창조된 때 곧 주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만들고 들의 모든 초목이 땅에 있기 전에 초목을 만들며 들의 모든 채소가 자라기 전에 채소를 만드신 날에 하늘들과 땅의 생성 세대들이 이러하니라.

    영어로는 이 부분의 4절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These are the generation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they were created, in the day that the LORD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이들의 요지는 땅과 하늘들이 창조된 때 그것들의 생성 세대들의 ‘세대들’이 복수로 되어 있으므로 그것들이 창1:1과 창2:1에 의거하여 두 번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으로 가서 ‘generations’를 검색해 보면 성경에 총 118회가 나옵니다. 그러면 이 118회는 다 두 번 생성된 것을 뜻할까요? 창2:4 다음에는 5:1이 나옵니다.

    이것은 아담의 세대들에 대한 책이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날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그를 만드시되
    여기도 창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면 ‘세대들’이라는 복수가 나오므로 아담도 두 번 창조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말로 세대라고 번역된 단어는 ‘생성되다’(generate)에서 나온 ‘생성된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세대들은 그에게서 생성된 후대 자손을 말하며 하늘들과 땅의 생성 세대들은 하늘들과 땅의 생성된 것들(products)을 뜻합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세대’라는 말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생성 세대’라고 하여 뜻이 덜 명확하게 되어 있어 조금 유감입니다. 나머지 117회도 살펴보면 다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단어를 가지고 재창조를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구차한 일입니다.
     
    마태복음 13장 35절
    이것은 대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내가 비유로 내 입을 열어 세상의 창건 이후로 은밀히 간직된 것들을 말하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의 주제는 세상의 창건(기초를 놓음)입니다. 간극 이론 지지자들을 여기의 그리스어 ‘카타볼레’(katabole)의 정확한 번역은 ‘세상의 창건’ 즉 ‘세상의 기초를 놓는 것’(foundation of the world)이 아니라 ‘세상을 아래로 내던지는 것’(casting down of the world)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카타볼레는 명사로 단 한 번도 ‘아래로 내던지는 것’이란 뜻으로 번역된 적이 없습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11번 나오는데 그중 열 번은 ‘창건’ 즉 ‘기초를 놓음’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세상의 창건 즉 기초들을 놓은 것이 아담 이전 세상의 파괴를 말한다면 누가복음 11장 50-51절의 의미를 상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1장 50-5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로써 세상의 창건 이후로 흘린 모든 대언자들의 피를 이 세대에게 요구하리니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은 사가랴의 피까지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피를 이 세대에게 요구하리라.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한 ‘이 세대’는 특별히 그분의 이적과 표적들을 보고 그분을 거절한 세대, 즉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만약 간극 이론 지지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주님께서는 타락한 천사들의 죄를 포함한 아담 이전 세상의 죄들 역시 그 세대에게 요구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앞뒤 문맥상 황당하고도 어리석은 해석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느니라.

    이것은 다소 미묘한 논쟁입니다. 간극 이론 지지자들은 이 구절이 해, 달, 별들의 빛이 넷째 날에 드러난 것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주장은 또한 첫째 날 창조된 빛은 하나님의 빛으로서 영원하며 따라서 그것은 창조되지 않은 빛이 확실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딜레마를 해결해 줍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죄를 지은 아담 이전의 세상이 어둠 속에 삼켜졌고 새로운 세상이 빛에 노출되었듯이 본성에 속한 자연인의 아담에게 물려받은 부패한 속성은 복음의 빛이 들어오기까지 어둠에 갇혀 있었다고 해석합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첫째 문제는 하나님께서 첫째 날 창조하신 빛은 그분의 빛과 같은 빛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분의 빛은 너무 밝아서 순식간에 우리를 소멸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대신에 그런 문제를 피할 정도의 약한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오직 영적인 몸만이 하나님 자신의 순수한 빛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서 발하고 있는 빛은 영적으로 인식되며 7절이 보여 주듯이 사람의 몸이라는 질그릇 안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뛰어난 권능이 하나님에게서 나며 우리에게서 나지 아니하게 하려 함입니다.’

    이 주제는 창세기 1장 2절의 어둠이 악 즉 하나님을 반대하는 상황을 묘사한다는 일부 간극 이론 지지자들의 주장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그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어둠을 만드셨고(시104:20) 이 어둠 역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습니다(창1:31).

    주께서 어둠을 만드사 밤이 되게 하시오니 숲의 모든 짐승이 밤에 기어 나오나이다(시104:20).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더라. 그 저녁과 아침이 여섯째 날이더라(창1:31).

    여기에서 전체 논쟁의 핵심은 앞뒤 문맥을 살펴보았을 때 창세기의 첫 절들과 상관이 전혀 없는 구절들을 창세기의 첫 절들과 억지로 연결하여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천사들과 거인들
    우리가 지금까지 검증한 모든 것들은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비평을 포함합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들을 변개시키고는 순수한 말씀이 아닌 자신의 견해를 본문이라고 읽는 실수를 범합니다. 성경 기록의 무오성과 하나님의 섭리에 말씀 보존을 믿는 사람들 즉 시편 12장 7절에서처럼 그분의 말씀들을 보존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에게, 인간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한 비평적 논평들은 오리의 등에 있는 물처럼 붙어있지 못하고 곧바로 떨어져 나갑니다. 하나님 말씀의 보존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이런 비평적 주제들이 그들의 믿음을 둔하게 하고 영을 화나게 할 뿐입니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7).

    이제 우리는 간극 이론 지지자들이 애용하는 창세기 6장과 베드로후서 2장과 3장 말씀을 살펴보려 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 4-5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천사들을 아끼지 아니하사 지옥에 던지시고 어둠의 사슬에 넘겨주어 심판 때까지 예비해 두셨으며 옛 세상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의 선포자인 여덟째 사람 노아를 구원하시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고

    맑은 정신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5절에서 언급된 ‘옛 세상’이 ‘노아의 홍수 이전 세상’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위에서 살펴본 대로 ‘세상’은 인간의 영역을 말하며 이것은 ‘세상’이라는 단어에 관한 성경의 첫째 용례로부터 나온 정의입니다. 또한 죄를 지은 천사들은 그 홍수 즉 노아의 홍수 전까지는 아직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유다서 6절에서 말하고 있는 천사들과 같은 천사들입니다.

    또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영존하는 사슬로 묶어 어둠 밑에 예비해 두셨는데 이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욥기 38장 7절은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의 모퉁이 돌을 놓을 때 즉 창조의 셋째 날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경건한 셋의 후예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구는 셋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130살이나 되었기 때문입니다(창5:3). 따라서 이 존재들은 어떤 영적인 창조물 즉 천사들입니다. 유다서 6절의 유일한 짝은 창세기 6장 2절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람을 섬기도록 창조된 천사들이며 그들이 긴밀하게 연합하여 탐욕으로 유혹을 받아 자신들의 처음 처소 즉 근무지를 떠났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고 합리적인 성경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6장 2절과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과 또 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자기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로 삼으니라.…당시에 땅에는 거인들이 있었고 그 뒤에도 있었으니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그들이 저들에게 아이들을 낳았을 때더라. 바로 그들이 옛적의 강력한 자들 즉 명성 있는 자들이 되었더라.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과거에 명성 있는 강력한 자들 즉 거인들을 낳았다고 말합니다. 그 거인들이 4절의 아이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우리는 이스라엘이 골리앗 같은 거인들로 인해 직면한 문제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의미심장하게도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역사 역시 그 땅에 살던 거인들의 땅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마지막 참고 구절은 베드로후서 3장 5-7절입니다.

    5 그들은 이 사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고 또 땅이 물에서 나와 물 가운데 서 있는 것을 일부러 알려 하지 아니하느니라. 6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때 있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여 간직하사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기 위해 예비해 두셨느니라.

    간극 이론 지지자들은 지구의 파괴와 그것에 따른 재창조 전 지구(땅)의 상태를 언급하기 위해 6절을 이용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베드로후서 3장 5절은 창세기 1장 9절절에 나오는 지구의 상태를 설명하지 결코 창세기 1장 2절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하늘 아래 물들은 한 곳으로 함께 모이고 마른 육지는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1:9).

    창세기 1장 9절 이후의 상황은 노아의 홍수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 2장 5절에서 ‘옛 세상’이라고 불린 그때는 노아의 홍수 이전 즉 아담과 이브와 그 후손들이 살던 때의 세상을 말하며 그들은 노아의 때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습니다. 우리는 또한 5절에서 언급된 ‘하늘들’이 6절에서 멸망한 것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6절에서는 세상 즉 사람들이 멸망하였습니다. 그래서 5절에 기록된 하늘들은 7절에서 언급된 대로 재창조됨 없이 이날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극 이론 지지자들은 그 하늘들 역시 멸망되었다고 가정하고는 노아의 홍수 때에 하늘들의 멸망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6절의 물의 넘침은 노아의 홍수를 말하는 것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옛 하늘들 역시 파괴되었다는 간극 이론의 가정에서 출발한 이런 추정은 분명히 성경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고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특히 여기서 하늘들은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즉 이것은 대기권의 첫째 하늘과 우주 공간의 둘째 하늘을 말합니다. 따라서 간극 이론에 따르자면 그때의 창1:1과 1:2의 홍수는 둘째 하늘인 우주 공간도 파괴했음이 틀림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아담이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지구에 사람들이 살았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주장들의 신빙성을 성경을 기준으로 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것들은 성경은 물론이요, 인간의 과학으로도 지지를 받을 수 없는 허무한 이론임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이 나오던 1850년경에 결국 과학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무능함과 창조 과학에 대한 소양 부족 때문에 일부 신학자들이 진화론의 시간들을 맞추기 위해 간극 이론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들은 전혀 뜻밖에도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수렁에 빠지게 되고 말았습니다.

    보통 수준의 교양을 가지고 상식적인 사고를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간극 이론의 근거로 내세우는 대부분의 성경 구절들이 앞뒤 문맥 보았을 때 미래의 심판을 언급하는 구절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간극 이론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에 억지로 맞추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말씀들을 결정적으로 변개했다고 봅니다. 또한 간극 이론의 근거로 삼는 성경 구절들을 성경의 문맥 밖에서 임의대로 해석하고 제시했음이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따라서 아담 이전 세상의 파멸과 그 이후의 재건 이론은 성경과 심지어 인간의 과학, 그 어느 쪽의 지지도 받지 못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역사의 진실을 가리는 인간의 허망한 산물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재창조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코필드, 라킨, 럭크맨,낙스 등의 훌륭한 성경 신자들의 재창조 주장을 반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재창조등의 특이 사항을 제외한 이분들의 글의 대부분은 나무랄 데 없이 좋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주제가 성경 신자들 간의 교제를 막는 심각한 이단 교리는 아니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성경 신자들이 이 문제로 심각하게 분열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 참고 링크(재창조 반박 글 모음) --------------
     
    럭크맨의 극단적 세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a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